공장에서 짓고 현장에서 조립한다 - DfMA와 모듈러 BIM 실전
"공장에서 벽을 통째로 만들어서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면 안 될까?" — 이 질문은 더 이상 미래의 상상이 아니다. 국내 건설 현장에서도 OSC(Off-Site Construction, 탈현장 시공) 방식으로 시공되는 프로젝트가 점점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모듈러·프리패브 방식이 기존의 CAD 도면 기반 워크플로우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도면으로는 공장과 현장 사이의 정밀한 인터페이스를 관리할 수 없고, BIM이 이 간극을 메우는 핵심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DfMA와 BIM의 관계DfMA(Design for Manufacturing and Assembly)는 제조와 조립을 전제로 설계하는 방법론이다. BIM은 이 방법론을 실현하는 플랫폼이다. 설계자가 BIM 모델에서 정의한 부재가 공장의 CNC 기계를 직접 구동하고, 생산된 부재가 현장에서 조립될 위치와 순서까지 모델 하나로 통제되는 것이 DfMA+BIM의 목표다.
기존 시공과 모듈러 시공 — BIM이 필요한 지점이 다르다
재래식 현장 타설 공법에서는 BIM의 주요 역할이 간섭 체크와 물량 산출이다. 부재들이 현장에서 하나씩 지어지기 때문에, 2cm 오차는 현장에서 알아서 흡수된다. 반면 모듈러 시공에서는 PC(Precast Concrete) 부재든, 철골 모듈이든, MEP 랙이든 공장에서 미리 제작된 부재가 현장에서 서로 맞물리지 않으면 조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허용 오차가 현장 타설의 10배 이상 빡빡하다.
여기에 BIM의 진가가 드러난다. 공장에서 제작되는 부재 하나하나를 LOD 400 수준으로 모델링하고, 접합부(Connection)를 포함한 전체 인터페이스를 가상으로 조립해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시행착오로 맞추는 게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 완벽하게 조립된 상태를 먼저 검증하고, 그 데이터를 그대로 공장에 보내는 방식이다.
| 비교 항목 | 재래식 현장 시공 | DfMA 모듈러 시공 | BIM의 역할 차이 |
|---|---|---|---|
| 부재 생산 | 현장에서 제작 | 공장에서 제작 (CNC, 로봇 용접) | BIM → CAM 데이터 직접 전송 |
| 허용 오차 | 1~2cm 수준 | 2~3mm 수준 | 접합부 정밀 모델링 필수 |
| 인터페이스 | 현장에서 조정 | 사전 모델에서 검증 완료해야 함 | Clash Detection → 간섭 제로 상태로 공장 출하 |
| 정보 요구 LOD | LOD 300으로 충분 | LOD 400 필수 (제작 정보 포함) | 패밀리 단위로 제조사·재질·제작 사양 포함 |
| 현장 인력 | 기능공 다수 | 조립공 소수 + 크레인 | 4D 시퀀싱으로 조립 순서 최적화 |
[Image: 공장 CNC 기계가 가동되는 사진(좌)과 BIM 모델에서 해당 부재의 LOD 400 접합부 디테일이 확대된 화면(우)을 나란히 연결한 비교 — 디지털에서 정의된 데이터가 공장 기계를 직접 구동하는 흐름]
모듈러 유닛의 BIM 모델링 전략
모듈러 건축의 핵심은 유닛 분할이다. 건물 전체를 어떤 단위로 나눠서 공장에서 만들 것인가 — 이 기준이 설계 초기에 잘못 잡히면, 공장 생산성과 현장 시공성이 동시에 무너진다. BIM 모델러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유닛 분할의 세 가지 축은 다음과 같다.
1) 구조적 분할 — 어디서 자를 것인가
구조 안전성을 유지하면서 운반·양중이 가능한 중량과 크기로 유닛을 나눈다. 일반적으로 도로 운송 가능한 최대 폭은 3.5m, 최대 높이는 3.2m 정도다. 모듈러 유닛 하나가 15톤을 넘지 않도록 분할해야 하는데, 이 제약을 무시하고 설계한 유닛은 공장에서 만들어도 현장까지 운반할 수 없다.
Revit에서는 각 유닛을 하나의 Assembly로 그룹화하고, 유닛 간 접합부는 별도 Family로 분리해서 관리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다. Assembly 단위로 물량·중량·운송 정보를 추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 설비적 분할 — 배관과 덕트는 어디서 연결할 것인가
MEP 시스템은 유닛 경계를 가로지르기 마련이다. 배관이 유닛 A와 유닛 B를 걸쳐서 지나갈 때, 연결 지점을 유닛 경계면에서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건이다. 일반적으로 유닛 간 배관은 커플링(Coupling) 접합으로 하고, 그 접합점은 현장 조립 시 접근 가능한 위치에 배치한다. 유닛 경계에서 파이프가 10cm만 빗나가도 현장에서 용접 절단이 발생한다.
BIM 모델에서 유닛 경계면에 Interface Control Point를 설정해두면, 유닛 A와 유닛 B의 배관 끝점 좌표가 정확히 일치하는지 자동으로 검증할 수 있다. Dynamo로 이 검증을 자동화한 사례들이 이미 해외 현장에서는 보편화되고 있다.
3) 공정적 분할 — 어떤 순서로 조립할 것인가
유닛 A가 먼저 설치돼야 유닛 B를 그 위에 올릴 수 있는데, 유닛 B의 배관 연결 부위가 유닛 A 바닥 슬래브에 가려져 있다면? 이것이 전형적인 모듈러 공정 오류다.
4D 시뮬레이션에 각 유닛의 조립 순서를 반영하고, 유닛 간 접합부(배관, 덕트, 전기 트레이)가 해당 순서에서 접근 가능한 위치에 있는지를 검증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이 단계를 건너뛰면, 현장에서 조립하다가 앞 유닛을 다시 해체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Image: 모듈러 건물의 분할 다이어그램 — 건물 전체를 유닛별로 분해하고, 유닛 간 배관·덕트 접합점이 화살표로 표시된 분해도(Exploded View)]
LOD 400 — 제조 정보를 BIM에 담는다는 것
LOD 400 수준의 모델링은 기존 LOD 300의 "시공 가능한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제조 가능한 수준"**이다. 차이는 구체적이다. LOD 300 기둥은 "600×600 RC 기둥"이지만, LOD 400 기둥은 "철근 12-D25, 스터럽 D10@200, 베이스 플레이트 600×600×25t, 앵커볼트 4-M24, 용접 타입 FPBW" 수준의 정보를 담는다.
모듈러 BIM에서 LOD 400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공장 CNC 연결 때문이다. 철골 부재 하나가 공장에서 제작되려면, BIM 모델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절단 길이, 홀 직경, 용접 타입, 표면 처리 사양까지 출력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데이터는 IFC가 아닌 STEP, DSTV, NC 파일 같은 제조업계 표준 포맷으로 변환되어 CNC 기계에 전달된다.
LOD 400이라고 전부 CNC로 직행하는 건 아니다BIM 모델을 CNC 데이터로 변환할 때 가장 흔한 오류는 원점(Origin) 불일치다. Revit의 내부 원점과 CNC 기계의 공작물 원점이 다르면, 부재가 엉뚱한 위치에서 절단된다. BIM 모델을 CAM으로 보내기 전에 좌표계·단위(mm vs inch)·용접 여유 길이의 일치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국내 OSC 현황과 BIM 의무화
국내 OSC(Off-Site Construction)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정부 주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공공주택에 OSC 방식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 중이며, 조달청도 PC 공법 기반의 모듈러 교량·지하차도에 BIM을 의무화하는 추세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은 2018년부터 정부 발주 학교·병원·주택에 DfMA 방식을 의무화했고, 싱가포르는 PPVC(Precast Prefinished Volumetric Construction) 공법에 BIM 기반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공통점은 BIM 모델 없이는 OSC 프로젝트 입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규제 환경을 만든 점이다.
국내도 같은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모듈러·PC 공법이 확대될수록 공장-현장 간 데이터 교환의 정밀도 요구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BIM이 그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마무리
DfMA+BIM은 단순한 설계 방식의 전환이 아니라, 건설 산업이 제조업처럼 디지털 데이터로 생산 라인을 통제하는 단계로 올라서는 징후다. 아직 국내에서는 실험적 프로젝트가 많지만, 3~5년 안에 이 흐름은 돌이킬 수 없는 주류가 될 것이다.
당장 실무에서 준비할 것이 있다면 이것이다. 패밀리 하나를 골라서 LOD 400 수준으로 모델링해보고, 그 객체의 모든 제조 정보(재질, 용접 타입, 홀 직경, 표면 처리)를 Shared Parameter에 채워보라. 그리고 그 데이터를 CSV로 추출했을 때 공장 기술자가 이 CSV만 보고 부재를 제작할 수 있는지를 자문해보라. 이 질문에 "가능하다"라고 답할 수 있는 모델이 갖춰지는 순간, DfMA+BIM의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